다가가지 못하는 지혜에 대한 우화

스승이 제자에게 물었다.

"예형이 욕쟁이가 되어, 벌거벗고 북이나 치게 된 까닭은 세상이 어질지 못한 터이더냐?"

한참을 묵묵히 마루를 내려다보던 제자는,
해가 저물어가는 노을이 번져올 때를 기다려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스스로 제 재주를 감추는 덕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스승이 빙긋이 웃으며 또 물었다.

"네가 이 때에 세상에 나와 어지러운 이치를 헤아리게 된 까닭은 무엇이더냐?"

제자는 지긋이 입술을 깨물고 밤새 답을 고심하다가
얼음 송곳 같은 새벽달이 떠오를 때에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고 만나는 것이 어찌 사람의 헤아림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
해가 저물고 해가 떠오르는 때를 가려 세상에 나오지 못한 업보이겠지요"

스승은 벌떡 일어나 고기 한 접시와 술 한 말을 마시고 제자에게 말했다.

"지혜를 구하는 것이 무위의 덕을 깨우치는 것만 못하다.
이제 그만 밭을 갈아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제자는 말없이 절을 하고 산을 내려갔다.
마침 해가 중천에 올라 땀은 비오듯 쏟아졌지만,
혈기왕성한 제자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동네어귀에 다다랐을 때,
그가 수행을 떠나던 날 짚신꾸러미를 챙겨주었던 서당 훈장이 물었다.

"그래 네가 그토록 찾고자 했던 사람의 도리를 깨우쳤더냐?"

청년은 말없이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해 일구지 못했던 밭을 돌보아야겠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쟁기질 하는 모양을 살피며 땅을 일구었고,
그의 노랫소리에 맞추어 김을 메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그는 새끼를 꼬아 짚신을 삶아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는 장단에 맞추어 흥얼거리며 동네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저 산 깊은 곳에 가면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는 고약한 스승님이 계신다.
매일 술 한말과 고기 한 접시를 드시면서 밭을 갈지도 소를 돌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되는 깨우침을 알려주시지..."

청년은 그렇게 이야기를 들려주며 밭을 갈고,
짚신을 삶고 노래를 부르며 여름과 가을을 보내고,
어느 해인가 겨울 총총히 산 위로 난 발자국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가 세상에 나는 때는 정하지 못하였으나,
그는 마침내 세상을 버리는 때를 알아 자기 뜻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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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혼자밥먹는남자 | 2009/02/16 01:25 | 밤에 쓰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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