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트 vs. 닉슨

리처드 닉슨. 

*** 게이트라는 꼬릿말(suffix)을 남긴 미국의 대통령. 60%의 치적을 강변하고 싶었고, TV 인터뷰를 통해 정치적인 재기를 꿈꾸었던 "확신범" 정치가 리처드 닉슨의 씁쓸한 강변과 고백의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다. 저무는 석양을 등지고 선 검은 실루엣의 정치인 닉슨과 그로 하여금 "내 정치 인생은 끝났습니다"라는 독백을 끌어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건 '토크쇼 MC' 데이비드 프로스트의 대결이 이 이야기의 뼈대이다. 

왜 닉슨인가? 우리에게, 지금 '닉슨'은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한 편의 잘 짜여진 구성과 빼어난 연기로 풍성해진 드라마라고 하기에는,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 물음이 남겨진 것 같다. 아마도 '무릎팍 도사' 강호동이 '확신범' 전직 대통령 전두환을 인터뷰 한다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영화를 보게 된다. 우리에겐 아직도 정치를 고급 코미디(?)로 만들 여유가 없는 걸까? 20년 쯤 전의 정치적 사건과 그 사건의 중심에선 '악당'의 확신에 찬 신념이 드리운 '희극적 아우라'를 우린 아직도 여유있게 음미할 수가 없는 것일까? 

'2Mb'라는 별명의 쌉쌀한 희극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현직 대통령을 가진 때문일까? 워터게이트라는 변명할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른 악당이 마침내 발가벗겨져 쓸쓸한 노을 속으로 잠겨드는 페이소스를 우리는 여유있게 바라볼 수가 없다. 데이비드 프로스트라는 '파티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누구에게나 호감을 얻는 쾌활한 정신의 '광대'가 끌어내는 '맥베스'스러운 장엄한 패배의 노을에 드리운 "악행의 공허함"을... 우리는 아직 여유있게 음미할 수가 없다. 우리의 80년대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인 것 같다. 

영화 제목처럼, 전혀 다른 속성을 가진 두 인물의 치열한 대결과 아이러니한 공감대, 그리고 저 깊은 밑바닥에서 만나는 자기발견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사는 우아하고  매혹적이며, 미소띈 표정 없이 내미는 말 한마디가 자지러지게 폐부를 흔드는 웃음으로 승화되는 '진정한 희극정신'의 영화이다. 처절하게 노력하지만 아무도 좋아해주지 않는 아이러니한 정치가의 장엄한 패배에 카메라를 들이 댄, 독특한 발상의 이야기가 긴 여운을 남긴다. 

두 배우의 담담하면서도, 격렬한 내면을 우아하게 담은 연기는 몇 시간이고 서서 박수를 치고 싶을 만큼 뛰어났다. 다큐멘터리인듯 인터뷰에서 인터뷰로, 현재 시점과 과거의 어느 때를 연상시키는 인터뷰와 지금 이야기되는 인터뷰와 방송이라는 세트 위에서 이루어지는 인터뷰가 뒤섞이는 묘한 편집이 어우러져, 팽팽하게 대결하는 두 주인공의 전혀 다른 위엄과 뜨거움, 쓸쓸한 패배와 공허한 승리가 교차되는 삶의 한 단면이 서늘하게 담겨있었다. 

두어 번 쯤은 더 돌아보아도 여운이 길게 드리워질... 아주 오랜만에 보는 깊은 맛의 이야기에 기꺼운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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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혼자밥먹는남자 | 2009/02/06 02:27 | 지독한 영화 읽기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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