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13일
겁쟁이 처용(處容)의 굴욕
밤들이 노닐고 돌아온 처용(處容)이 노래를 불렀다.
검붉은 근육질 등짝의 역신과 싸워 이길 승산은 도저히 없지 않던가? 그는 잠시 멈추어 어찌해야 할지 생각에 빠졌다. 겁쟁이 처용은 도저희 저 힘센 역신을 이길 도리가 없다. 그렇다고 모른척 문을 등지고 돌아선다면,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네 다리가 뒹구는 곳은 그의 집이거늘?
그는 현명하게도 노래를 불렀다. 마침 달도 밝았고, 그의 노래는 역신과 그의 아내에게 점잖은 노크를 한 셈이 되었다. 마침내 그의 평범하지 않은 대처는 대범함으로 승화되었다. 설화는 다행이 힘 센 역신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그렇기에 그 이야기는 운치있는 이야기로 남았다.
만약에 힘센 역신이 하던 일을 계속하고, 그의 아내는 열에 들떠 신음을 토해내기라도 했다면, 이 장면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처용은 여전히 고상하게 노래만 부르고 있었을까? 하지만 생각해보라. 밝은 보름달은 툇마루를 거쳐 검푸른 밤을 은은히 갈라 육덕진 절구질에 여념이 없는 갸녀린 여인과 근육질 수컷의 등짝을 비추고 있다. 불콰히 달아오른 점잔뺀 양반네는 호탕하게 웃음을 머금고 노래를 부른다. 그의 노래 소리에 맞추어 두 남녀는 교합에 리듬을 싣는다. 처용은 돌아서서 노래를 부르며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노래를 몇 곡이나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진땀이 흐르지 않겠는가?
처용의 호방함은 '도덕적인 역신'의 점잖은 사과를 전제하지 않으면 그야 말로 한바탕 웃음거리가 되어버린다. 자신의 아내는 공개적으로 다른 남자의 품에서 못다한 육욕을 불태우고, 그 상대는 겁쟁이 사내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힘을 과시한다. 이 애처러운 상황을 모면하려던 잔꾀는 도리어 겁쟁이의 처용을 희극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버린다.
더 이상 부를 노래가 생각나지 않는 난처한 얼굴의 처용이 진땀을 흘리며 고개를 돌린다. 그의 입꼬리는 말려 올라가고 그는 더 이상 호탕하게 웃을 수 없다. 처용은 차라리 크게 노래를 부르고 그 자리를 떠났어야 했다.
이글루스 가든 - 이글루 소설가 동맹
# by | 2008/12/13 23:47 | 형식을 찾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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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이 겁쟁이라고요?
몽둥이나 흉기로 둘을 또는 역신을 내려쳐야 하나요?
처용은 아내를 사랑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잃을 수 없기에 눈 감은 겁니다.
겁쟁이랑 같은 수 없는 거지요.
너무나 사랑하는 여인이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겼다고 모든 게 끝난 것 아니라고 믿고 싶은 건지 그런 건지는 시간이 답해 줄 겁니다.
내가 지금 처용처럼 도를 닦고 있습니다.
욕망과 육체만이 사랑의 전부는 아니니까요.
때론 힘이 들겠지만, 이겨내시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냥 상상의 소산만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꼭 경험을 담은 것도 아닙니다. 그저 기억 속에서 건져올린 어떤 파편에 살을 입힌 이야기일 뿐입니다.
누군가를 비웃거나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혹시라도 마음에 상처를 드렸다면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