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으로 돌아가기로 한 까닭은

이야기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극은 한 때 인생을 걸었던 길이다. 10년을 애둘러 걸어갔다.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가 목덜미를 놔주지 않는 탓도 있지만, 연극의 곤궁함이 견디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연극을 업으로 하는 삶이 평탄한 삶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거야 그전부터도 알고 있었고, 연극의 곤궁함은 생활의 위협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 이야기 하는 것이 가진 통찰의 깊이가 울림을 주지 못해서이고, 보여주는 방식이 눈을 휘둥그렇게 만드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슴 떨리는 감동도, 삶을 관통하는 지혜도, 도발적인 문제제기도 하지 못하는 연극을 어떻게 지켜봐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서른이 되기 전까지 나는 그 화두를 이겨내지 못했다. 너무 어렸던 것이었을까? 

10년을 지낸 후, 서른 살 무렵을 고스란히 삶의 문제와 씨름하며 지내고 니니, 연극을 바라보는 시선이 여유로워졌다. 얼마간 소박한 이야기라도 진지하게 노력하는 모습은 마음을 끌었다. 예술혼의 극한까지는 아니더라도, 진지하게 삶과 사회에 대해 고민하며 만든 흔적이 있다면 기꺼이 박수를 치게 되었다. 잘 단련된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했고, 안무나 무대가 시각적 즐거움을 주기라도 하면 흥에 겨워지기도 했다. 좋은 앙상블이 나올라치면 엉덩이를 들썩이며 기운을 실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도 그런 공연은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연극은 여전히 빈곤하다. 상상력이 빈곤하고, 문제의식이 빈곤하고, 통찰력이 빈곤하다. 생활인으로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구태여 응원해야할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한다. 그들의 어려움보다 주변의 실직이 더 눈을 끌고, 그들의 이야기보다 매일 매일 벌어지는 일터의 현장 이야기가 더 마음을 끈다. 연습하듯이 공연하는 배우들을 보면 참 편하게 산다는 생각이 든다. 큐를 놓치는 조명이나 무대전환이 벌어지면 그들의 직업 윤리를 의심해보게 된다. 예술가의 혼으로 관객을 압도하길 바란다면 무리일까? 웃음을 준다 할지라도 정제되고 치열하게 연습된 예술가의 땀방울이 베어나와야 티겟값이 아깝지 않은 것 아닐까? 

마음을 다잡고 극장으로 향한다. 당분간은 그저 구경나온 아저씨의 자세로 보이는 만큼만 애기하려 한다. 연극을 보는 연습을 10년이나 하지 않았으니, 내게도 준비기간이 필요하지 싶어서이다. 글을 쓰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준비운동 없이 내달렸다가는 어지러운 판에 쓰레기만 보태는 꼴이 되기 싶다. 차근차근 몸만들기를 하듯, 극장을 살피는 맑은 눈을 되찾으려 한다. 그리고 이야기 할 것이다.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다면 둘 중의 하나이다. 나의 눈과 말이 제대로 살피지 못했거나, 연극이 관객을 잃어 생명이 꺼져가고 있거나... 어쨌든 이 걸음은 혼자만의 싸움이다. 상대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스스로 정한 규칙과 기준을 넘어서는 '길닦기' 같은 걸음이다. 

아마도 이제는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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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혼자밥먹는남자 | 2008/12/01 00:55 | 극장의 사잇길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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