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29일
[첫 이야기] 혼자 밥 먹는 일요일 아침
## 밤에는 창턱에 걸터앉아 담배를 핀다. ##
창밖으로 담배연기가 춤을 추듯 흘러간다. 창 아래는 꽉 막혔던 도로를 벗어난 차들이 득달같이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린다. 잠들기까지 도시의 풍경을 내려다보며 차창에 비친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행복한 이야기를 듣지 못한지 오래이다. 흉흉한 소식은 바람결에도 숙덕거리며 날아왔다. 비라도 내리면 차분히 견대낼 힘을 모으기라도 할텐데... 몇 일째 버석한 겨울 바람만 불고 있다.
## 일요일 아침이 가장 힘들다. ##
버렸던가? 버려졌던가?
무익한 질문이지만, 일요일 아침에는 어김없이 이 물음을 떠올리게 된다. 40년의 인생, 10년의 직장생활, 간간이 끼어든 방황... 남은 것은 빛으로 얻은 이 오피스텔과 자동차가 전부다. 아이들은 멀리 있어 닿을 수 없다. 소식은 미니홈피로 엿보듯이 들락거리는 게 고작이다. 생활력을 잃은 남자는 분리 수거 대상이라고 누가 그랬다. 악착같이 살아남기 위해 콘프레이크를 쏟아낸다.
벽지를 바라보며 찬 우유에 스며든 콘프러스트를 삼킨다. 아직도 신문을 읽는다. TV는 저 혼자 세상 이야기를 떠든다. 한 입 떠 먹고 신문을 넘기고, 미지근해진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한 장을 넘긴다. 하루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을 때가 있다. 일요일에는 특히 심했다. 리모콘을 끼고 앉아 연신 피자와 자장면과 통닭을 삼켰다. 뱃살은 세겹 주름으로 접혀 움직일 때마다 출렁거렸다.
식단을 짜주는 일을 누가 도와주었으면 싶다. 일하는 아주머니를 둘 수도 있겠지만, 그럴 여유도 없고 그렇게 살림해야할 만한 세간살이도 없다. 하지만 밥 먹는 일은 고역이다. 누구라도 좋으니 이야기를 하며 밥을 먹을 수 있다면 행운이다. 일요일은 그게 쉽지가 않았다. 나름대로의 사교생활을 해야겠지만, 도무지 마음이 편치 못했다. 가까운 사람들은 아직도 내가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줄 안다. 누가 근황을 묻지도 안겠거니와, 딱히 무언가를 설명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그저 빙그레 웃으며 사회적 관계라는 안전 거리로 물러났다. 누구도 그 거리 너머로 들어오는 일은 없다.
'기러기 아빠'처럼 보이는 남자들이 적잖이 보인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가 난처한 건 어색한 공감대를 만들어준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들은 '썩소'로 친근함을 표시한다. 그럴 때면 퍼뜩 놀라 딴청을 부린다. '나는 기러기 아빠가 아니다' 젊은 여자들은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를 노골적으로 경멸했다. 경멸했다. 내가 그들의 멸시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아마도 중년의 홀아비 냄새나는 이 남자가 잠재적인 추행이라도 벌일까봐 잔뜩 경계를 하는 것 같다. 섹스를 해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 점심은 나가서 먹자, 제발 ##
회사라도 다니지 않았으면 이 생활은 정말이지 오래전에 자살로 마감했을 것 같다. 토요일에는 그나마 회사라도 기웃거리며 시간을 때운다지만, 일요일엔 하루가 끝없이 긴 것 같다. 해는 유난히 길고, 겨울 바람에 잔뜩 웅크러든 몸은 어디든 움직이는 것을 귀찮아했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니 식욕이 생길리가 없다. 이따금 날아오는 문자에는 '운동 꼭 하세요. 점심은 채소가 많이 든 걸로 챙겨두시고'라고 온다. 습관적으로 답을 한다. 문자도 이젠 제법 익숙해져간다. 배고픔이 느껴지고 먹을 거리를 고민하기 시작하면, 전화기를 들고 자꾸만 만지작 거린다. 나가기가 귀찮다. 그보다는 일요일 오후에 의자가 넷 달린 테이블의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밥을 퍼먹는 일이 너무 어렵다. 따가운 시선도 시선이거니와 잘못한 것도 없이 꾸역꾸역 밀어넣는 데만 급급해야 하는 밥이 달가울리 없다. 마트 같은 데 딸린 밥집은 어김없이 4인용 테이블로 맞추어져 있다. 일본에는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을 위한 식당도 많다던데...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 중에 혼자 밥 먹는 사람이 없단 말인가?
점심은 결국 김치 라면으로 귀결되었다. 그나마 김치라도 사러 나갔다 오니 기분이 상쾌했다. 저 혼자 대견해하며 칭찬을 해준다. 잘했어. 그래도 바깥 공기를 쐬니 좋지? 어때? 저녁엔 쐬주나 한잔 깔까? ... 누구와? 일요일 저녁을 침범하는 건 사회생활의 위기를 광고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혹여 몇 번인가 자리를 만들어보긴 했지만, 친구들은 마누라 눈치에 가족 모임에 별로 달가와 하지도 않았고, 나와서 하는 소리라고는 '너 언제까지 그렇게 지낼래?' 하는 이야기 뿐이었다. 그 다음은 '왠만하면 합쳐라'였고, 그 다음은 '너 나이먹고 돈 떨어지면 정말 비참해진다'로 매듭지어진다. 누가 모르나?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 버렸던가? 버림 받았던가? ##
그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 질문이었다. 그렇게 알 수없는 상황을 되새김질 하며 저녁 해가 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창밖엔 다시 퀭한 중년 남자의 얼굴이 비쳐졌다. 메트릭스에 나온 전지가 떠올랐다. 전기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사람이 사육당하듯, '행복한 내일'을 위해 사육당하고 있었다. 누가 그리 하라고 했던가? 그 흔한 애인이라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담배를 피워문다. 문자를 보내주는 그 여인도 사회적 관계의 거리 너머로는 들어올 수 없다. 이따금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어쩌다 섹스도 하지만, 그것을 불륜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밋밋했다. 그렇다고 불륜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설명할 수 없는 갈망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녀의 일상이 흐트러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해 할 수 없는 혼란은 나 하나로 족했다. 아내에게 남자가 생겼다는 걸 받아들이기까지 나는 아주 오래도록 아파해야 했다.
저녁을 먹는 시간을 놓치고 끝내는 닭다리에 맥주를 마시며 TV를 본다. 건강을 돌보아야 할 하등의 이유를 찾을 수 없었기에, 기름기에 찌든 닭다리는 묘한 쾌감을 주었다. 이빨도 제대로 닦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일요일이 계속 반복되는 꿈을 꾸었다. 악몽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벽지를 바라보며 혼자 밥먹는 모습이 시리즈로 펼쳐지는 건 끔찍했다. 시간이 궁금해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이 긴 하루가 일요일이 아니고 토요일이었다니... 일요일이 다가오는 시간이 소스라치게 무섭다.
창밖으로 담배연기가 춤을 추듯 흘러간다. 창 아래는 꽉 막혔던 도로를 벗어난 차들이 득달같이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린다. 잠들기까지 도시의 풍경을 내려다보며 차창에 비친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행복한 이야기를 듣지 못한지 오래이다. 흉흉한 소식은 바람결에도 숙덕거리며 날아왔다. 비라도 내리면 차분히 견대낼 힘을 모으기라도 할텐데... 몇 일째 버석한 겨울 바람만 불고 있다.
## 일요일 아침이 가장 힘들다. ##
버렸던가? 버려졌던가?
무익한 질문이지만, 일요일 아침에는 어김없이 이 물음을 떠올리게 된다. 40년의 인생, 10년의 직장생활, 간간이 끼어든 방황... 남은 것은 빛으로 얻은 이 오피스텔과 자동차가 전부다. 아이들은 멀리 있어 닿을 수 없다. 소식은 미니홈피로 엿보듯이 들락거리는 게 고작이다. 생활력을 잃은 남자는 분리 수거 대상이라고 누가 그랬다. 악착같이 살아남기 위해 콘프레이크를 쏟아낸다.
벽지를 바라보며 찬 우유에 스며든 콘프러스트를 삼킨다. 아직도 신문을 읽는다. TV는 저 혼자 세상 이야기를 떠든다. 한 입 떠 먹고 신문을 넘기고, 미지근해진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한 장을 넘긴다. 하루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을 때가 있다. 일요일에는 특히 심했다. 리모콘을 끼고 앉아 연신 피자와 자장면과 통닭을 삼켰다. 뱃살은 세겹 주름으로 접혀 움직일 때마다 출렁거렸다.
식단을 짜주는 일을 누가 도와주었으면 싶다. 일하는 아주머니를 둘 수도 있겠지만, 그럴 여유도 없고 그렇게 살림해야할 만한 세간살이도 없다. 하지만 밥 먹는 일은 고역이다. 누구라도 좋으니 이야기를 하며 밥을 먹을 수 있다면 행운이다. 일요일은 그게 쉽지가 않았다. 나름대로의 사교생활을 해야겠지만, 도무지 마음이 편치 못했다. 가까운 사람들은 아직도 내가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줄 안다. 누가 근황을 묻지도 안겠거니와, 딱히 무언가를 설명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그저 빙그레 웃으며 사회적 관계라는 안전 거리로 물러났다. 누구도 그 거리 너머로 들어오는 일은 없다.
'기러기 아빠'처럼 보이는 남자들이 적잖이 보인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가 난처한 건 어색한 공감대를 만들어준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들은 '썩소'로 친근함을 표시한다. 그럴 때면 퍼뜩 놀라 딴청을 부린다. '나는 기러기 아빠가 아니다' 젊은 여자들은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를 노골적으로 경멸했다. 경멸했다. 내가 그들의 멸시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아마도 중년의 홀아비 냄새나는 이 남자가 잠재적인 추행이라도 벌일까봐 잔뜩 경계를 하는 것 같다. 섹스를 해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 점심은 나가서 먹자, 제발 ##
회사라도 다니지 않았으면 이 생활은 정말이지 오래전에 자살로 마감했을 것 같다. 토요일에는 그나마 회사라도 기웃거리며 시간을 때운다지만, 일요일엔 하루가 끝없이 긴 것 같다. 해는 유난히 길고, 겨울 바람에 잔뜩 웅크러든 몸은 어디든 움직이는 것을 귀찮아했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니 식욕이 생길리가 없다. 이따금 날아오는 문자에는 '운동 꼭 하세요. 점심은 채소가 많이 든 걸로 챙겨두시고'라고 온다. 습관적으로 답을 한다. 문자도 이젠 제법 익숙해져간다. 배고픔이 느껴지고 먹을 거리를 고민하기 시작하면, 전화기를 들고 자꾸만 만지작 거린다. 나가기가 귀찮다. 그보다는 일요일 오후에 의자가 넷 달린 테이블의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밥을 퍼먹는 일이 너무 어렵다. 따가운 시선도 시선이거니와 잘못한 것도 없이 꾸역꾸역 밀어넣는 데만 급급해야 하는 밥이 달가울리 없다. 마트 같은 데 딸린 밥집은 어김없이 4인용 테이블로 맞추어져 있다. 일본에는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을 위한 식당도 많다던데...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 중에 혼자 밥 먹는 사람이 없단 말인가?
점심은 결국 김치 라면으로 귀결되었다. 그나마 김치라도 사러 나갔다 오니 기분이 상쾌했다. 저 혼자 대견해하며 칭찬을 해준다. 잘했어. 그래도 바깥 공기를 쐬니 좋지? 어때? 저녁엔 쐬주나 한잔 깔까? ... 누구와? 일요일 저녁을 침범하는 건 사회생활의 위기를 광고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혹여 몇 번인가 자리를 만들어보긴 했지만, 친구들은 마누라 눈치에 가족 모임에 별로 달가와 하지도 않았고, 나와서 하는 소리라고는 '너 언제까지 그렇게 지낼래?' 하는 이야기 뿐이었다. 그 다음은 '왠만하면 합쳐라'였고, 그 다음은 '너 나이먹고 돈 떨어지면 정말 비참해진다'로 매듭지어진다. 누가 모르나?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 버렸던가? 버림 받았던가? ##
그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 질문이었다. 그렇게 알 수없는 상황을 되새김질 하며 저녁 해가 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창밖엔 다시 퀭한 중년 남자의 얼굴이 비쳐졌다. 메트릭스에 나온 전지가 떠올랐다. 전기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사람이 사육당하듯, '행복한 내일'을 위해 사육당하고 있었다. 누가 그리 하라고 했던가? 그 흔한 애인이라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담배를 피워문다. 문자를 보내주는 그 여인도 사회적 관계의 거리 너머로는 들어올 수 없다. 이따금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어쩌다 섹스도 하지만, 그것을 불륜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밋밋했다. 그렇다고 불륜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설명할 수 없는 갈망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녀의 일상이 흐트러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해 할 수 없는 혼란은 나 하나로 족했다. 아내에게 남자가 생겼다는 걸 받아들이기까지 나는 아주 오래도록 아파해야 했다.
저녁을 먹는 시간을 놓치고 끝내는 닭다리에 맥주를 마시며 TV를 본다. 건강을 돌보아야 할 하등의 이유를 찾을 수 없었기에, 기름기에 찌든 닭다리는 묘한 쾌감을 주었다. 이빨도 제대로 닦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일요일이 계속 반복되는 꿈을 꾸었다. 악몽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벽지를 바라보며 혼자 밥먹는 모습이 시리즈로 펼쳐지는 건 끔찍했다. 시간이 궁금해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이 긴 하루가 일요일이 아니고 토요일이었다니... 일요일이 다가오는 시간이 소스라치게 무섭다.
# by | 2008/11/29 19:31 | 혼자 밥 먹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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