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1월 08일
콘프로스트를 먹는 아침
닷새를 연거푸 술을 마시고, 콘프로스트에 두유를 부어 아침을 먹는다.
간이 식탁의 맞은편엔 아무도 없는 빈 자리가 있다. 이것을 자유로움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고독 속에서 자유로움의 향기가 뭍어나온다면, 그 자유로움의 바닥에 길게 드리운 그림자의 쓸쓸함도 생각해주어야 한다. 방안을 채우는 따듯한 밥 익는 내음을 생각하다 숟가락을 놓쳐버린다.
삶을 이어가기 위한 조건들을 해내야 한다. 먹어야 하고, 자야 하고, 입어야 한다.
그것들을 위한 전제들이 '일'이라는 것을 부른다. 곳곳에서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소식이 들려온다. 그들의 처지에 비한다면야, 이 삶은 평온하고 안락한 일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주어진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그렇게 배웠다. 하지만 그 명제를 마음가짐에 담아본 적이 몇 번이나 되던가? 가진 것 보다는 가지지 못한 것에 눈을 빼앗기며 살아가기 마련이라고 하지 않던가?
감정을 다치는 일이 이제는 더 이상 생겨나지 않았으면 한다. 더 웅크릴 곳도, 도망칠 곳도, 견뎌낼 힘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마음을 두지 않으면 다칠 일이 없다고 한다. 마음을 둘 곳이 없으면 허허로움이 눈처럼 쌓여 질식할 것 같다고 여긴다. 마음을 다치더라도 사람에게 다가가는 쪽을 택할 것인지, 마음의 빗장을 걸어잠그고 고독의 냉기를 참아내는 쪽을 택할 것인지... 묻는다. 자꾸만 마음을 다치게 되는 이유를 알고 싶다.
씹는 맛도 없고 훌훌 마셔버리듯 삼켜지는 콘프로스트 같은 관계를 생각해본다. 필요하다는 영양소는 모두 있고, 간편하고 관리하기도 쉽다. 먹는 즐거움에 따르는 원초적 기쁨이 부족할 뿐이다. 관계를 정의하지 않고 만나고, 이야기하고,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가는... 그런 관계도 가능할까? 아무런 감정적 애착이나 기쁨없이 메마른 섹스가 가능할까? 배설을 하듯, 관계의 필요성이라는 것만 남겨두고, 서로에게 필요한 것들을 거래하는 그런 관계가 의미가 있는 것인지 묻게 된다. 소통과 교감이 빠진 관계에서 가족이라는 테두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게 되는 것일까?
콘프로스트만을 먹고 산다면 과연 몇 일이나 생존을 지속할 수 있을까?
# by | 2009/01/08 08:44 | 혼자 밥 먹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





